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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ing granite stelae in the Northern Stelae Park, Aksum

Adam Jones from Kelowna, BC, Canada (CC BY-SA 2.0)

기사9 분 읽기

스토리

악숨: 홍해를 건넌 아프리카 제국

서기 3세기에 저술한 페르시아의 예언자 마니는 세계 4대 강국으로 로마, 페르시아, 쿠샨 — 그리고 악숨을 꼽았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유럽과 인도를 잇는 홍해 무역로를 장악했고, 로마보다 먼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동료 신자들을 박해하던 왕국을 무찌르기 위해 아라비아해를 건너 군사 원정을 감행했다. 서양 역사는 이를 대체로 잊고 있었다.

Seyfi Cem Ba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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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te pencil sketch banner for \ Aksum: The African Empire That Crossed the Red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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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 고원, 북위 14°07', 동경 38°43', 해발 2,100미터 지점에 고대 도시 악숨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 중심부의 왕실 묘역에는 돌로 된 오벨리스크들이 늘어서 있다. 현재까지 서 있는 가장 큰 비석 2호는 높이 24미터, 무게 약 170톤으로 단일 화강암 블록을 깎아 만들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높은 단일 석조 기념물이다. 그 옆의 비석 3호는 원래 높이 33미터로, 인류가 채석한 단일 조각 기념물 중 가장 큰 규모였으나 1937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 군대에 약탈당했다가 68년이 지난 2005년에야 악숨으로 반환되었다.

오벨리스크들은 악숨 왕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묘비이다. 이들은 기독교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표면에 새겨진 가짜 창문과 문, 정상부의 원반과 초승달 문양은 이슬람 이전 남아라비아에 뿌리를 둔 고대 사바 종교 전통에 속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식 기독교 국가 중 하나가 된 나라에 이 기념물들이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은, 악숨이 과거를 지우기보다 앞으로 이어 나갔음을 보여주는 척도이다.

"악숨은 위대한 도시로, 고대 에티오피아의 수도이며, 이곳에서 상인들이 홍해를 건너 인도와 아라비아로 항해한다."

— 코스마스 인디코플레우스테스, 『기독교 지형학』(6세기)의 의역

네 개의 위대한 강국

페르시아의 예언자 마니(서기 216–274년)는 마니교의 창시자로, 세계에는 로마, 페르시아, 쿠샨(인도 북서부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악숨이라는 네 개의 위대한 왕국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는 후대의 귀속이나 추종자들의 사후 평가가 아니라, 악숨 제국의 전성기에 마니 자신이 직접 쓴 텍스트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이 네 나라를 열거한 이유는 그것들이 당대 세계의 정치적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곧 그 제국들의 영향력과 군대, 상업 네트워크가 알려진 세계를 구조화하고 있었다.

!악숨 가옥 파사드 - 주요 비석 지구 - 악숨 - 에티오피아 8701131121

악숨 가옥 파사드 - 주요 비석 지구 - 악숨 - 에티오피아 8701131121 | Adam Jones,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켈로나 (CC BY-SA 2.0)

악숨이 이 목록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홍해 통제를 통해 확보되었다. 제국의 항구 아둘리스는 현대 에리트레아의 줄라 만에 위치했으며, 수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5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로마 제국과 인도 사이의 모든 해상 무역은 홍해를 통과했다. 아둘리스의 악숨 상인들과 관리들은 양방향으로 흐르는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그 유통을 촉진했다.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나간 상품으로는 포도주, 올리브유, 유리, 구리, 주조 은화가 있었다. 인도에서 서쪽으로 들어온 상품으로는 후추, 면직물, 비단이 있었다. 악숨 자체가 수출한 상품으로는 상아(동아프리카 내륙의 코끼리에서 획득), 금(수단 고원에서 획득), 흑요석(다나킬 저지대에서 획득), 그리고 노예가 있었는데, 노예 무역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악숨은 그 주요 참여자였다.

!스텔레, 악숨 8140296506

스텔레, 악숨 8140296506 | Rod Waddington, 호주 커건야 (CC BY-SA 2.0)

그리스어로 쓰인 『에리트라해 항해기』는 기원후 40~70년경에 작성된 상인용 안내서로, 아둘리스를 상세히 기술한다. 정박이 용이한 대형 항구로서 악숨의 통치를 받았고, 이집트와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익명의 저자는 내륙으로 이동하여 악숨 수도에 도달한 여정을 묘사하는데, 그곳은 견고한 석조 건물들과 왕실, 그리고 잘 정비된 행정 체계를 갖춘 도시였다. 『에리트라해 항해기』는 정치지리학 저술이 아니라 실용적인 상업 문서였으며, 악숨에 대한 기술은 그곳을 직접 방문한 상인의 평가였다.

!주 스텔레 지구의 스텔레 - 악숨 악숨 - 에티오피아 - 02 8702223458

주 스텔레 지구의 스텔레 - 악숨 악숨 - 에티오피아 - 02 8702223458 | Adam Jones,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켈로나 (CC BY-SA 2.0)

로마 이전: 악숨의 기독교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에 서 있는 높이 23미터의 악숨 오벨리스크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개종은 일반적으로 유럽 기독교 문명의 기원적 순간으로 인용된다. 그의 밀라노 칙령(서기 313년)은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고, 니케아 공의회(서기 325년)는 교리를 표준화했으며, 서기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악숨은 그보다 먼저 개종했다.

The Aksumite king Ezana (reigned c. 320–360 CE) accepted Christianity through Frumentius, a Syrian theologian who had been shipwrecked in the Red Sea in his youth, enslaved, and then elevated to a position at the Aksumite court. Frumentius eventually received episcopal ordination from Athanasius of Alexandria (the same Athanasius involved in the Arian controversy at Nicaea) and returned to Aksum. Ezana's conversion is usually dated to around 330 CE — approximately 50 years before the Roman Empire made Christianity its state religion.

The evidence is not just documentary. A stone inscription survives in Aksum's Ge'ez language, in Sabaean script, and in Greek — a trilingual royal declaration recording Ezana's military victories. Earlier versions of the same king's inscriptions invoke polytheistic deities; the later versions specifically invoke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This is the oldest known royal inscription anywhere in the world to use explicitly Trinitarian Christian language. It predates the equivalent Roman declarations by decades.

The Ethiopian Orthodox Church, which descends directly from the Aksumite conversion, remains one of the oldest continuously practising Christian institutions in the world. Its liturgy is conducted in Ge'ez — the ancient language of Aksum — which has not been spoken as a vernacular language for perhaps 1,000 years but has been maintained as the language of scripture and worship.

The Campaign Across the Red Sea

The most dramatic expression of Aksumite imperial power came in the early 6th century CE, during the reign of King Kaleb (also known by his throne name Ella Atsbeha). In approximately 523 CE, the Himyarite king Yusuf Asar Yathar — known in later Arabic and Ethiopian tradition as Dhu Nuwas, "Lord of the Sidelocks" — converted to Judaism and launched a persecution of the Christian population in his kingdom, which occupied most of modern Yemen and southwestern Saudi Arabia. The massacre of the Christian community at Najran, a major trading city inland from the Asir mountains, killed several hundred people; the dead were later venerated as the Martyrs of Najran.

The event was documented in Greek, Syriac, and Ethiopian sources. The Byzantine Emperor Justin I, whose empire shared religious interests with Aksum, reportedly encouraged Kaleb to intervene. Kaleb assembled a fleet of approximately 70 large ships and a land army and crossed the Red Sea from Adulis to the Arabian coast.

원정은 성공했다. 두 누와스는 패배하여 전사했다(예멘 전승에 따르면 그는 포로가 되느니 말을 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악숨은 힘야르 왕국에 기독교 총독을 임명했는데, 처음에는 수마이파 아슈와라는 인물이었고 이후에는 아브라함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사나에 유명한 알칼리스 대성당을 세웠다. 이로써 악숨은 아라비아의 점령 세력이 되어 홍해 양안의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는 악숨의 지리적 판도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이 원정은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이다. 여러 독립적인 사료에 기록되어 있고 비문으로도 확인되며, 꾸란의 수라 알필("코끼리")에 언급된 사건의 직접적인 전신이다. 알필 장은 악숨 군대가 메카의 카바를 파괴하려다 실패한 시도를 가리키는데, 이는 악숨 총독 아브라함이 서기 570년경에 감행한 것으로, 전통적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로 전해지는 시기이다.

비석과 그 무덤들

악숨의 왕실 고분군은 지상에서 이 거대한 단일석 오벨리스크로 표시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높은 비석인 2번 비석은 표면에 가짜 창문, 문, 수평 들보 문양이 새겨져 있어 다층 구조의 악숨 건축물 정면을 석재로 재현하고 있다. 꼭대기의 원반과 초승달은 남아라비아 종교 전통에서 계승된 달의 신 알마카의 상징이다. 이 비석은 1993년 발굴에서 일부가 드러난 매장실 위에 세워졌는데, 그곳에는 석조 무덤방들과 풍부한 부장품이 있었다.

3번 비석은 로마에서 반환된 후 현재 부분적으로 재조립되어 있는데, 이탈리아인들의 약탈 이전에 이미 쓰러져 있었다. 아마도 고대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석이 서 있었을 당시 높이는 33미터로, 인류가 세운 가장 높은 단일석이었을 것이다. 악숨의 기술자들이 520톤짜리 화강암을 채석하고 운반하여 그 높이까지 세울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정확한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중대한 공학적 성취이다.

서양 역사가 잊은 이유

악숨의 쇠퇴는 군사적 요인보다는 점진적이고 경제적인 것이었다. 서기 7세기에 이슬람이 아라비아와 북동아프리카로 확장되면서 홍해 무역망이 재편되었다. 아둘리스에서 세금을 거두고 비잔틴 이집트와의 무역을 관리하던 악숨의 상인들과 관리들은 상업 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기독교 비잔틴 제국은 축소되었고 새로운 이슬람 세력이 해상 교통로를 장악했다. 악숨은 해안에서 후퇴하여 내륙으로 위축되었다. 수도는 남쪽 산악 지대의 오늘날의 랄리벨라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12세기에 경이로운 암굴 교회들이 조성되었다. 이는 비석들만큼이나 야심찬 기념물로, 붕괴하지는 않았지만 변모한 국가가 건설한 것이었다.

유럽의 악숨에 대한 지식은 18세기까지 단편적이었다. 1768년에서 1773년 사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스코틀랜드 탐험가 제임스 브루스는 유럽 독자층을 대상으로 오벨리스크와 유적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기술을 가져왔다. 그가 묘사한 내용—125기의 비석이 있는 들판, 그중 다수는 여전히 서 있는 상태, 석조 도시의 폐허, 위대한 제국에 관한 구전 전승—은 유럽에서 믿음을 얻지 못했다. 브루스는 거짓말쟁이로 치부되었다. 그의 기록은 훗날 후속 조사와 발굴을 통해 결국 입증되었지만, 그때쯤이면 악숨 문명사가 세계사적 기억에서 차지해야 할 자리는 이미 훼손된 뒤였다. 마니가 로마와 나란히 열거했던 제국은 논쟁의 대상이 된 한 편의 여행기로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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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Anatolia. (2026). 악숨: 홍해를 건넌 아프리카 제국. Atlas Anatolia. https://atlasanatolia.com/ko/stories/aksum-the-african-empire-that-crossed-the-red-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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