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발견과 초기 조사
스톤헨지는 수천 년 동안 솔즈베리 평원에서 눈에 띄는 지형지물로 존재해 왔으며, 중세 연대기에 언급되고 예술가들에 의해 묘사되었다. 최초의 기록된 발굴은 1620년대에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가 왕실 허가를 받아 중앙에 구덩이를 파서 동물 뼈와 숯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1666년 존 오브리의 관찰은 최초의 체계적인 기술을 제공했으며, 기념물을 드루이드의 것으로 돌렸으나 이 이론은 나중에 반증되었다. 1740년대 윌리엄 스투클리는 지점(至點) 정렬을 인식하여 고고천문학 분야를 개척했다.
"어떤 이들은 브리튼인들이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거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일랜드로 돌을 가져왔고 멀린이 그의 마법으로 브리튼으로 옮겼다고 한다."
— 몬머스의 제프리, 『브리타니아 열왕사』 IX.12, c. 1136

건설 단계
1500년에 걸쳐 건설된 스톤헨지는 여러 뚜렷한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 기원전 3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초기의 기념물은 원형 토루 울타리와 오브리 홀이라고 알려진 56개의 구덩이 고리로 구성되었으며, 이 구덩이에는 화장 매장과 목재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2600년경, 건설자들은 말버러 다운스에서 거대한 사르센석을, 웨일스의 프레셀리 언덕에서 더 작은 블루스톤을 운반하여 상징적인 삼석탑(트리리톤)과 외부 원형으로 배치했다. 기원전 1600년경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블루스톤을 내부 원형으로 재배치하고 외부 도로를 확장했다.
"스톤헨지의 돌들은 3천 년 이상 웨식스를 지켜보았다. 폐허라기보다는 바위에 새겨진 달력이다."
— 스톤헨지에 대한 고고천문학적 해석의 의역
천문학적 정렬

스톤헨지의 축은 한여름 일출과 한겨울 일몰과 정렬되어 있어 의도적인 태양 지향을 나타낸다. 주 원형 밖에 위치한 힐 스톤은 하지 때 태양이 떠오르는 지평선 상의 지점을 표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달 정렬도 주장하지만 이는 덜 확실하다. 이러한 정렬의 정밀성은 기념물이 농업 또는 의례 목적의 달력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매장과 의례 경관

발굴 조사를 통해 오브리 홀 내에서 50구 이상의 화장 매장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가장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 스톤헨지를 영국에서 가장 큰 신석기 시대 묘지 중 하나로 만든다. 주변 경관에는 수백 개의 고분, 커서스, 우드헨지, 더링턴 월스가 산재해 있어 스톤헨지가 광대한 의례 복합 단지의 일부였음을 나타낸다. 인골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일부 개인은 웨일스에서 온 것으로 밝혀져 이 유적지가 광범위한 중요성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보존과 현대 연구
20세기의 복원 캠페인은 쓰러진 돌들을 다시 세우고 기념물을 안정화했다. 티모시 다빌과 제프리 웨인라이트가 이끈 2008년 발굴은 블루스톤 박편의 존재를 확인하고 석재 원형의 연대를 수정했다. 지표 투과 레이더와 자기 탐사를 이용한 최근의 비파괴 조사는 더링턴 월스의 '슈퍼 헨지'를 포함하여 이전에 숨겨진 특징들을 밝혀내어 스톤헨지 경관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편하고 있다.





